봄 20,
진짜 잘 안 썼네.
작년 가을 하반기 경제가 어렵다 어렵다 하던 시기 권고사직으로 11월 말에 회사를 퇴사했다. 느낌은 있었다. 예상이라고 해야할까. 다만 내 생각으로는 연봉이 삭감이 된다라는 상상만했었기 때문에 권고사직을 막상 받아들였을 때, 통보 받았을 때라고 해야하겠지? 이해는 되는데 그냥 굉장히 현실감이 없었다. 홀가분하다기 보다 좀 막막하기도 했고, 또 한 편으로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. 그러니까 이직을 할 수 있는, 꿈꿀 수 있는 마지막.
마지막이라고 이름 붙이기 우습지만 난 그랬다.
엄마가 아프셔서 병원을 왔다갔다 하던 때라 그 날도 병원에 갔다. 그 날 아마 병원에서 내가 잤던 것 같다. 병원은 11월임에도 새벽에는 추웠다. 오히려 낮은 병원이 포근하다고 할지, 그런 감인데 밤과 새벽에 누워 있으면 찬기가 벽에서부터 닿았다. 새벽에도 왔다갔다 하는 간호사님들 소리로 깨고 자고를 반복했다. 좀 내 삶이 어떻게 하나 싶다는 감이 든 건 진짜 퇴사 마지막 날이었을 때였다. 그 날도 회사를 갔다가 짐만 챙겨서 병원으로 왔다. 그 날도 병원에서 잤다.
엄마가 아프시고 우리 집은 이사를 가기로 했다. 그래서 수리한 집을 늦여름부터 환기를 시키고 쓸고 닦고 했다.
엄마가 퇴원하고 집에 일주일 정도 있다가 이사를 했다. 막 추워지기 시작해서 나무에 잎이 없던 11월 말일이었다. 주말이었고, 새집으로 이사가기 전에 가구를 한가득 버렸다. 그 전날은 쓰레기를 버리느라 잠을 늦게 잘 정도였다. 20년 넘게 살아온 집에서 짐을 정리한다는 건 진짜 엄청난 일이었다. 갖가지 짐이 어디서 그렇게 나왔는지.
책상을 버리고, 의자를 버리고, 오래된 옷장도 버렸다. 이사갈 집이 지금 집에 비하면 많이 좁았지만 아늑한 것 같았다.
이사를 하고 2주 정도를 집 정리하고 없는 옷 서랍을 사고 했다.
새 집은 이케아랑 가까웠고 없는 가구를 이케아에서 사서 조립하게 되었다. 덕분에 내 방에도 책꽂이만 가져왔지 나머지는 모두 조립하 가구였다. 진짜 조립 엄청나게 한 것 같다. 심지어 하다가 앞뒤를 바꿔서 해서 옷 서랍장 하나는 중고품처럼 되어버렸다.
12월 중순 숨을 돌리고, 이력서를 새로 썼다.
전 직장에서의 권고사직이라 실업급여 신청을 했고, 서울과 멀어진 곳이라 하루 날을 잡아서 새로 사진도 찍었다.
실업급여 신청을 하러 간 일자리센터는 사람이 넘쳐났고 그 어마어마한 대기인원 속에서 일하는 사람도 힘드신 것 같았다. 교육을 받으러 오라는 종이를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. 인터넷을 찾아보고 뭘 적어가야 하나 보며 교육날 교육을 들었다. 난 내가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고,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지만 2020년이 되고서는 조급해졌다.
면접은 넣은 이력서 수에 비하면 턱없이 안 왔고, 그렇다고 전 직장과 내 전 직장의 이력을 생각하며 아무데나 가기 싫었다. 보는 것은 별로 없었다.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없었으면 했다. 그게 제일 첫번째였다. 열 손가락이 모자르게 이력서를 넣었고, 한 손가락에 꼽게 면접을 봤다. 설날 연휴 코로나가 심각해져서 타격이 커졌고, 코로나는 사그라들 기미가 없었다. 그렇다고 시간이 누굴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었다. 실업급여를 받으면서도 정말 간절하게 취업을 하려고 노력했지만, 이건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안다. 너무너무 잘 안다. 나는 이미 전에 오래 놀아봤기 때문에 안다.
그렇다고 오래 놀았던 기간 동안 일을 안 해 본 것도 아니었다.
들어가서 일 양이 많아서 2주만에 나온 곳도 있었고, 들어가서 체계가 없는 느낌과 내가 여기에 안 맞는 것 같은 느낌에 2일만에 관둔 곳도 있었고, 또 한 곳은 고용주의 말도 안 되는 기 죽이기와 공갈협박에 집에 울며 들어와 그 다음날 관두겠다고 말했다가 다시 울며 뛰쳐 나온 곳도 있었다. 아직도 기억이 나는게, 그 길로 노동부에 갔더니 울지 말라며 급여 못 받으면 오라고 하셨다.
봄이 막 시작되었을 때 회사를 들어갔다.
아직 바람이 많이 차고 꽃이라고는 목련도 안 보일 때였다. 괜찮은 거리에 괜찮은 임금에 그리고 면접 때 들었고, 각오도 했지만 몸이 못 버티는 야근. 그게 가장 컸다. 5일을 출근했고 2일을 1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. 주말에 몸이 내 의지대로 안 움직이는구나, 피곤하다라는 걸 깨닫고 관두게 되었다.
아직도 코로나가 여전하다. 여전하다 못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지경이었다.
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. 뭐가 맞는지 모르겠지만, 일단은 버티는 게 맞는 것 같다.